세 시간만에 탄생한 월터 헌트의 옷핀

세 시간만에 탄생한 월터 헌트의 옷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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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금속 브로치와 버클로 옷을 여미기도 했다. 옷과 완전히 분리되고 직선 핀보다 더 커서 잃어버릴 확률도 줄었다. 또한 옷이 쉽게 느슨해지지 않도록 충분히 단단하게 붙들어 고정할 수 있었다. 안전핀은 무려 2500년 전에 로마인들이 개발했는데, 19세기 중반에 다시 발견해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1842년 뉴욕주 브루클린에 살던 토머스 우드워드는 '숄과 기저귀 등을 안전하게 고정하는 방패 핀을 만드는 방법' 으로 특허를 받았는데 우드워드는 그 핀을 '숄 그리고 기저귀용 빅토리아식 방패 핀' 이라고 불렀다. 오목하게 파인 작은 금속방패로 핀의 한쪽을 감싸고 핀의 다른 끝을 경첩 모양으로 연결해놓은 핀이었다. 요즘 사용하는 안전핀과 아주 비슷했다. 우드워드는 특허신청서에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을 사용하면 숄이나 기저귀를 착용한 후에 아무리 움직여도 헐거워지는 일이 없고 ··· 어떤 경우에도 핀의 끝이 사람을 찌르거나 할퀴지 않을 것다." 그러나 이 핀에는 꼭 필요한 스프링 장치가 없어, 핀이 방패 안에서 단단하게 고정되기 위해서는 반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숄이나 기저귀의 부피가 커야 했다.

1849년 월터 헌트는 숄 핀의 결함을 해결한 '옷핀'을 발명하고 특허를 받았다. 그의 핀은 스프링을 단 철사나 금속 그리고 스프링의 힘으로 팽팽해진 팬의 끝을 감싸 붙잡아둘 수 있는 뚜껑 또는 덮개로 이루어진 출중한 물건이었다. 내가 본 마이크로필름으로 저장된 모든 특허출원 문서 가운데, 딱 하나 헌트의 안전핀에 관한 삽화만이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가 찾아낸 원고 쪼가리처럼 낡아 보였다. 그만큼 원래의 종이 문서가 자주 복사되어 가장자리가 해지고 떨어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심사관들과 연구원들, 발명가들이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의 비밀을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해 빈번하게 참조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 한편으로 새로운 안전핀을 발명하게 된 뒷이야기도 유명하다.

헌트는 왕성한 발명가였으며, 연발 소총과 재봉틀의 원리를 고안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사실 미국에서 최초로 재봉틀을 만들어냈지만, 이것 때문에 직업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우려해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품목들로는 많은 특허를 받았으며, 출원을 위해서는 당연히 도면을 작성해야 했다. 당시 헌트는 제도사에게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낡은 철사 한 가닥으로 발명한 장치가 무엇이든, 그것으로 받아낸 특허권을 양도하고 대신에 빚을 탕감하되 추가로 400달러만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 안전핀은 세 시간 동안 만지작거리며 골몰한 끝에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헌트의 특허출원 서류 도면에는 서명은 없지만, 실제로 도면을 그리고 특허권을 위임받은 제도사가 '윌리엄 리처드슨' 또는 '존 리처드슨'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가 그 특허로 이득을 보았든 간에, 발명가는 기존 여미개들의 결함을 극복했다고 분명하게 믿었다. 그는 "안전핀은 이제까지 사용하던 어떤 다른 죔쇠 핀보다 더 안전하고 내구성이 있으며, 다른 핀관느 다르게 부서질 연결부분도 없고 마모될 중심축도 없으며 헐거워지지도 않는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자체 스프링 핀은 '휘거나 ··· 또는 손가락 다칠 위험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앞선 장치들의 많은 결점을 분명하게 제거한 성과였다.

출처 :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 이인식 해제 / 백이호 옮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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