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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의 법칙과 새로운 재료의 등장
후크의 법칙과 새로운 재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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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이르자 생산성 향상으로 반 파운드의 업무용 핀 한 상자는 40센트, 종이카드에 꽂힌 가정용 핀은 75센트에 살 수 있었다. 초기에는 무른 금속인 놋쇠로 핀을 만들었기 때문에 강철로 만든 것만큼 강하지 못했다. 이후 대량생산을 하다 보니 강철로 만든 핀에도 녹이 슬기 시작했고, 니켈을 씌운 양질의 제품도 만들었지만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는 니켈이 부서지고 벗겨지기 일쑤였다. 핀이 꽂혔던 자리에 녹이 번지기도 했다.
강철 핀의 이러한 결함은 바느질을 하거나 의상을 잠시 입어볼 때처럼 가끔 사용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불편하지 않았다. 단지 핀을 오래 꽂아두어야 할 때만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었다(녹슨 핀은 사포로 문질러 닦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핀으로 묶어 보관해야 하는 서류와 파일은 녹이 슬어서는 안 됐고, 또 녹슬 일을 걱정하면서 핀을 닦아내는 것도 불편한 일이었다. 핀을 사용해 서류를 묶어둘 때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핀을 꽂은 구멍 주위에 남는 고리 모양의 녹 자국이었다. 서류를 묶었다가 풀어내는 일을 오랫동안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큰 골칫거리였다. 더구나 핀을 자주 꽂았던 모퉁이 부분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하자 이를 해결할 대안이 절실했다.
그래서 발명가들은 일찌감치 19세기 중반에 '파스너(fastener)'와 '클립'을 발명했다. 그러나 최초의 클립은 오늘날 우리가 종이 집게가 달린 필기판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일종의 스프링 장치를 가리켰다. 특허를 따낸 초창기의 작은 파스너는 두 개의 작은 돌기가 서류를 뚫고 나가 금속판 위에 포개지면서 서로 맞물리게끔 되어 있었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여겨오던 종이에 생기는 구멍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이 방법으로 뾰족한 핀의 끝부분 때문에 책상 위에 있는 다른 종이들이 걸려서 찢어지지는 않게 되었다. 새로운 파스너의 더 큰 장점은 종이를 넘길 때 손가락을 찔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864년의 특허에 따르면 새로운 파스너는 "법률 문서들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종이 모퉁이가 뒤집히거나 '강아지 귀'처럼 손상되는 일을 깨끗이 막을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는 다양한 파스너가 개발되었고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파스너의 새로운 변형들은 기존의 문제점을 일부 또는 전부 해결했다고 장담했다. '프리미어 파스너'라는 제품은 겉모양이 비슷한 다른 파스너와 달리 끝부분이 쉽게 뭉개지지 않는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종이를 뚫고 관통하는 날카로운 끝부분을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파스너도 개발되었다. 1887년 필라델피아의 에설버트 미들턴은 이러한 종류의 파스너로 특허를 따냈다. '종이 파스너에서 개선한 것' 은 펴서 늘일 수 있는 금속을 사용해 신기한 모양으로 찍어낸 다양한 날개들로 종이 모퉁이를 꽉 무는 방식이었다. 종이에 구멍을 뚫거나 절단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종이를 한데 묶을 수 있었다. 구멍을 뚫거나 접는 형식의 파스너도 사람들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여전히 팔렸는데, 낱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구멍이 뚫리거나 너덜너덜해지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미들턴의 개량품은 종이에 구멍을 뚫지 않고 파스너 밑에 붙어 있는 날개로 종이를 꽉 물어 고정해놓는 형태이다 보니 서류를 묶기 위해 많은 날개를 접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종이를 뚫어야 하는 것과 끼웠다 뺐다 하는 복잡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장치가 개발된다면 분명히 우위를 점할 터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금속판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파스너를 찍어내는 기계를 개발함에 따라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19세기 말에는 스프링 강선으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계가 등장했다. 이로써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파스너를 개발할 수 있었다.
강선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원형으로 되돌아가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최초의 성공적인 클립이 탄생했다. 그러나 복원력이 너무 지나치면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가 힘들다. 강철과 모든 재료는 가해지는 힘에 비례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 즉 '탄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일명 '후크의 법칙(Hooke's law)'이라 불리는 이 원리는 1660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로버트 후크가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1678년에 이르러서야 학설을 공표했다. 발표 순서를 놓고도 맹렬하게 경쟁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그는 원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라틴어 수수께끼 놀이의 하나로 철자를 거꾸로 한 형태인 'ceiiinosssttuu'라고만 발표했다. 2년 후 마음을 고쳐먹은 후크는 글자들을 다시 배열해 'Ut tensio sic uis(힘을 준 만큼 긴장이 생긴다)'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당길수록 저항도 커지는 특성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당기면 스프링은 탄성을 잃어 원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클립을 만드는 과정에 엔지니어와 발명가는 딜레마에 빠졌다. 인공물의 형태를 구성하는 재료의 특성이 동시에 한계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만일 쉽게 휘는 강선으로 클립을 만들 경우 스프링의 힘이 약해 종이를 단단히 묶어놓을 수 없었다. 반대로 강선이 잘 휘지 않는다면 클립의 형태를 뜻대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재료의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단순해 보이는 클립 같은 물건조차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에도 강선은 아직 일반화된 재료가 아니었다. 초기의 강선 제조사들은 제품을 활용할 곳을 열심히 찾아 다녔다. 존 로블링 같은 사람은 대량의 강철 케이블을 도입해 현수교를 직접 설계했을 뿐 아니라 건설, 홍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만일 운전을 하다 이 커다란 다리에서 잠깐 멈추어보면, 다리가 얼마나 출렁이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강철 케이블이 '후크의 법칙'의 한계를 초과해서 늘어난다면 다리는 녹아버린 플라스틱 모형처럼 제 모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강선을 꼬아 다리의 케이블을 만들든, 휘어서 파스너를 만들든 간에 새로운 재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특화된 기계가 필요했다. 클립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면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기계식으로 생산되는 일자 핀과 경쟁이 될 수가 없었다. 클립을 대량생산해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든, 적절한 강선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고 순식간에 강선을 휘어서 몇십 센트면 살 수 있는 물건들로 만들 수 있는 기계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책상 핀'에 대한 큰 불평은 없었지만, 수많은 발명가와 발명 지망생은 그 핀이 볼품도 없고 종이 파스너로서의 기능도 부적절하다는 점을 깨닫고 더 좋은 해결 방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출처 :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 이인식 해제 / 백이호 옮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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